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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의 대사들

“주권·국경 문제로 동맹과 경쟁한다면, 우리가 주고 싶지 않았던 통행권을 푸틴과 시진핑에게 주게 된다.”지난 14일 귀임한 니컬러스 번스(69) 주중 미국대사의 직언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린란드를 사겠다는 시도를 비판하면서다. 하버드 케네디스쿨 교수로 돌아간 번스 대사는 이임 인터뷰에서 3년간 겪은 베이징 근무의 핵심을 이렇게 정리했다.“‘중국의 신뢰를 얻고자 힘을 썼나’, ‘중국을 믿는가’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내 대답은 항상 같다. 신뢰의 문제가 아니다. 중국을 그들의 행동으로 판단하는 문제다. 그들이 공적·사적으로 하는 말이나 약속은 중요하지 않다. 중국에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를 벗어나 중국의 행동을 판단하고 중국에 행동을 요구해야 한다.”지난 2023년 말 귀임한 타루미 히데오(垂秀夫·..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 [펌]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에 나오는 명구. 들판의 꿩은 귀하게 여기지만 집안의 닭은 하찮게 여긴다는 속담도 떠오른다. 우리 집 가훈은 ‘흔한 것이 귀하다!’이다. 흔한 것의 익숙함에 속아, 멀리 있는 드문 것만 귀하게 여기는 어리석음을 경계하기 위함이다.  흔치 않은 금화에만 눈독 들이는 어지러운 세태지만, 눈만 뜨면 매일 보는 해와 달과 별빛들이 소중하고, 꽃과 새와 나무들이 소중하고, 명랑한 옆지기의 깔깔거리는 웃음이 나에겐 무엇보다 소중하다.고진하 시인출처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09788

저녁별 / ―송찬호(1959∼)

서쪽 하늘에저녁 일찍별 하나 떴다깜깜한 저녁이어떻게 오나 보려고집집마다 불이어떻게 켜지나 보려고자기가 저녁별인지도 모르고저녁이 어떻게 오려나 보려고송찬호 시인의 작품만 가지고 한 달 내내 글을 쓰라고 해도 쓸 수 있다. 올해의 모든 주에 그의 시만 가지고 칼럼을 쓰라면 기꺼이 쓸 것이다. 그의 시를 읽는 것은 큰 기쁨이 된다. 덕분에 나는 한 달 내내, 모든 주에 기쁘겠다.어느 분께서 나에게 ‘갓생’을 산다고 말씀해 주셨다. 갓생이 무엇인지 찾아보니 계획적이고 열심히 사는 모범적 인간이라고 한다. 뜻을 찾아보고 고개를 숙인다. 나는 ‘갓생 인간’이 되기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그보다 나는 이 시를 천천히 읽고 나서 오늘 저녁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저 별을 따라 깜깜한 저녁이 어떻게 오나 살피는 ..

관심사/시 2025.01.25

구겨진 생을 펴다 / 김해자

저마다 하루치의 수고를 닫아 건 캄캄한 골목길 오늘도 우성세탁소 안은 환하다 열린 문 사이로 스팀다리미 뿌연 열기 줄지어 승천하고 세탁통은 둥글게 둥글게 돌아가는데 몸에 맞지 않는 옷 덮고 미싱은 구석에서 말없이 존다 문득 다림판 앞에 서서 구겨진 허물 정성껏 펴는 아저씨 얼굴이 성자 같다 그의 등 뒤로 활짝 펴진 생들이 천장 가득 하늘거리는데 무거운 짐을 펴는 그의 등은 누가 펴줄까 하늘을 보니 별빛 몇 모여 세탁소 간판을 걸었구나『축제』(애지, 2007) 몸이 옷을 입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은 말을 입는 듯합니다. 고맙다는 말, 꼭 다시 오겠다는 말, 종종 생각났다는 말, 늘 응원하고 있다는 말. 이런 말들이라면 보드라운 스웨터를 입은 것처럼 한 시절 따뜻하게 지낼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모든 말이 ..

관심사/시 2025.01.25

[중앙시평] 대한민국은 ‘필사적 결단’이 절실하다

지금 대한민국의 최중요·최우선 과제는 무엇인가? 존망의 기로에 선 나라의 물줄기를 확고히 돌리는 일이다. 아니, 이미 존망의 기로를 넘어 점점 망해가고 있는 나라를 다시 살리는 일이다. 필자는 오랫동안 대한민국이 소멸국가를 넘어 자멸국가로 치닫고 있다고 호소한 바 있다. 최근의 사태 전개를 보면서 우리는 자멸의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음을 목도한다. 인류국가의 흥망의 역사를 돌아볼 때 깊은 불안감이 엄습한다. 우리는 이 정도였는가? 대한민국의 정점(Korea peak)은 여기까지인가? 자문해보자. 대체 왜 이리 사생결단식으로 갈등하는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무력과 폭력을 불사하면서까지 권력유지와 권력탈취에 매달리는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미래, 오늘의 민주주의와 법치는 망하더라도 내 진영과 내가 지지하..

관심사/세상 2025.01.24

주한미군의 미래 [펌]

“중국으로부터의 보호를 위해 주한미군이 필요합니다.” 2018년 방북한 미국의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국 견제를 위한 주한미군’을 거론했다고 회고록에 남겼다. 중국이 티베트, 신장처럼 한반도를 다루려 할 것이라는 반중 정서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미군을 침략자로 비난해 온 것과 배치되는데,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때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도 같은 취지로 언급했다. “철수 주장은 인민들의 감정을 달래기 위한 것이니 이해해 주기 바랍니다.” 김 위원장은 ‘통일 이후에도 평화 유지군 역할을 바란다’는 뜻도 이미 미국에 전했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경계심을 풀기 위한 전략적 수사로도 읽힌다. 미군은 한때 인계철선(引繼鐵線, tripwire)으로 불렸다. 폭발물의 격발 장치에 연..

관심사/세상 2025.01.23

겨울 좌천동 / 이성희(1959~)

저녁이 긴 외투를 끌고 모퉁이를 돌고 하늘은 흐린 겨울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언젠가 당신과 함께 이 골목길을 걸을 수 있다면 저 작은 보안등 불빛 하나가 어떻게 낡은 벽의 균열들을 살아서 숨 쉬게 하는지, 벽들이 어떻게 어둠 속에서 그리운 이야기를 꿈꾸는지 보여주고 싶습니다. 말라붙은 담쟁이덩굴에 불빛이 닿으면 황금색 수액들이 마른 줄기로 흐르며 조심히 연금술의 비결을 벽에 쓰는 것을, 어느새 겨울바람이 지우는 것을, 그 사이에 고단한 겨울의 하루를 견딘 집들이 하나씩 내밀한 내면을 켜고 발광체가 되고 있는 것을 말이지요. -시집 〈겨울 산야에서 올리는 기도〉(2012) 중에서 이성희 시인은 철학자입니다. 시와 철학의 멀기만 한 간극을 이렇듯 이어줍니다. 산비알 좌천동의 골목길에서 낡은 벽의 균열들이 작..

관심사/시 2025.01.22

수명의 종류 알아야 ‘장수 리스크’ 줄인다 [펌]

현재 65세가 노인의 기준이다. 유래는 ‘철의 재상’ 비스마르크가 1889년 사상 최초로 도입한 연금보험제도다. 프로이센-프랑스전쟁을 거쳐 독일 통일을 완성한 비스마르크가 전쟁에서 공을 세운 군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노인을 노동시장에서 퇴출하며 연금이라는 당근을 준 게 배경이다. 놀랍게도 당시 기대수명은 50세를 넘지 않았다. 짧은 수명 탓에 연금은 ‘그림의 떡’이었다.지금은 수명의 증가로 ‘몇 살까지 살 것인가’가 은퇴 설계에서 중요한 가정 중 하나다. 예상 기대수명에 따라 필요한 노후 자금의 크기가 달라진다. 너무 짧게 기대수명을 예상하면 자칫 ‘장수 리스크’에 노출된다. 즉 기대수명보다 더 오래 생존해 준비한 노후 생활비가 부족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60세에 은퇴해 90세까지 살 ..

관심사/상식 2025.01.22

태어나서 미안하구나! [장석주의 영감과 섬광]

나는 잘 살고 있나? 정녕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 어느 날 양치질을 하다가, 혹은 횡단보도 앞에서 무연히 서 있다가 울컥하는 물음과 마주칠 때가 있다. 느른한 권태와 의심에서 솟는 물음에 뒷덜미가 서늘해지는 것이다. 그건 그 물음에 생에 대한 원초적 불안과 두려움이 들어 있는 탓이다. 물음의 이면엔 공회전하는 자기 생에 대한 전면적 회의가 도사리고 있다. 회의는 당연한 것의 당연하지 않음을 자각하는 자에게 주어진다. 돌아보면 인생에서 당연한 것이란 건 없다. 혹시 있다면 사는 데 약간의 비굴, 수고와 피로가 세금처럼 불가결하게 따라붙는다는 점뿐.햇빛이 부끄러워 그늘만 디뎠지이 세상에 한 생명으로 투기된 순간 인생이란 수레의 바퀴를 굴리며 나아갈 운명에 처한다. 누군가는 망상이 설계한 세계에서 인생을..

관심사/세상 2025.01.22

보이지 않는 감옥, 확증편향 [펌]

SNS를 하다가 자주 뜨는 동영상과 글이 평소 좋아하거나 관심 두는 내용으로 채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알고리즘은 내가 ‘좋아요’를 누른 게시물과 연관된 내용을 보여주고 내가 좋아하거나 소비하는 콘텐츠를 분석해 비슷한 성향의 콘텐츠를 추천한다. 이렇게 되면 사용자는 자신의 관심사나 성향과 일치하는 정보만 반복적으로 접하게 되고, 어느새 나와 다른 의견은 아예 보이지 않는 필터버블에 갇힐 수 있다.오늘날 디지털 환경은 자기 생각과 일치하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는 확증편향을 더욱 강화한다.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의견이나 신념을 가진 그룹 안에서만 소통하며 특정 정보만을 반복적으로 보고 듣는다. 우리는 자신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린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선호하는..

관심사/세상 2025.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