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디카시에 대하여

디카시의 발전 방안에 대하여

너럭바위 一石 2023. 8. 22. 23:55

디카시의 발전 방안에 대하여

 

이승하

 

한국에서 시작되어 세계 여러 나라로 퍼져 나간 우리네 전통 문화유산으로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 판소리와 사물놀이가 있다. 외국인들이 이 두 가지 소리를 신기해하긴 하지만 따라 하며 즐기진 않으니 전파로 볼 수는 없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널리 퍼뜨린 딱지치기와 달고나 뽑기? 일시적일 것이다. 냉면비빔밥김치 같은 몇 가지 음식문화가 있지만 우리가 특허권을 주장하지는 못하고 있다. 한복을 차려입은 여성을 보고 외국인들이 아름답다고 감탄하지만 구경의 대상일 뿐 그들이 입지는 않는다. 우리도 결혼식 같은 행사 때 양가의 어머니가 입는 정도다. 그런데 디카시는 한국에서 시작되어 세계로 널리 퍼져 나간 유일한 문학 장르다.

 

일본의 하이쿠(俳句)는 세계에 널리 알려져 서구의 많은 문인학자들이 상찬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멕시코의 옥타비오 파스, 칠레의 파블로 네루다, 프랑스의 이브 본느프와, 미국의 게리 스나이더 같은 시인, 프랑스의 롤랑 바르트 같은 언어학자는 하이쿠 예찬론자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데이비드 메켄 교수가 한국의 시조를 높이 평가해 소개도 많이 하고 있지만 50년 넘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하이쿠에 비해 시조에 대한 외국인의 인지도는 결코 높지 않다.

 

그런데 디카시에 대해서는 우리가 자랑스러워할 만하다. 창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이상옥 교수가 200442일부터 619일까지 한국문학도서관 인터넷 카페에 디카시를 창안해 제일 처음 연재를 하고선 디카시집 고성가도를 묶어냈다. 그날이 2004915일인데 그럼 이제 디카시의 역사는 근 20년이 되었다. 디카시의 파급력은 아시아권을 넘어서서 인도, 유럽, 남미,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가고 있는 중이다. 아니, 세계 곳곳에 이미 디카시의 대유행을 일궈냈다. 디카시의 세계 전파에 대해서는 계간 디카시2020년 봄호에 실린 최광임 시인의 디카시, 한국을 넘어 세계로를 보면 잘 나와 있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이론적인 것은 이상옥 교수의 디카시를 말한다』『앙코르 디카시』『디카시 창작 입문같은 책이 도움을 줄 것이다. 한국디카시인협회 김종회 회장의 디카시, 이렇게 읽고 쓴다는 일종의 강의록이다. 디카시를 쓰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큰 지침서가 될 것이다.

 

이 글의 필자는 디카시의 발전을 위해 몇 가지 제안을 해볼까 한다. 디카시 공모전이 곳곳에서 행해지고 있다. 문예지상에 시를 실을 때는 아무나 싣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등단이라는 절차를 거친 시인들의 시를 싣는다. 수록 작품의 끝에 어느 해 어느 지면으로 등단한 시인인지 간단한 약력을 붙이는 경우가 있다. 독자들의 궁금증이 이 시인이 언제 어느 지면으로 등단했느냐에 집중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디카시 공모전은 등단하지 않은 일반인(시인의 반대말을 찾아내지 못해 일반인이라고 썼다)들이 투고한다. 그래서인지 사진은 나름대로 작품성이 있는데 옆에 실려 있는 시는 시라고 하기 어려운 글, 그렇다, 다만 아주 짧은 글 하나가 실려 있는 뿐이다. 디카시가 아닌 디카글인 것이다. 시 자체의 작품성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디카시는 시가 도무지 읽히지 않는 이 시대에 활자와 영상의 이종교배로 탄생한 혁명적인 장르임이 분명하다. 시집 판매의 보증수표였던 서정윤류시화정호승과 이정하원태연용해원이해인 등을 지금은 시인이라고 보기 어려운 하상욱최대호김동혁(글배우) 등이 구축(驅逐)하였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것일까? 이래저래 시는 위기 국면을 넘어서서 암흑기에 접어들었다고 보는데, 그 돌파구가 바로 디카시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시를 써본 적 없는 이들이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이 주는 영감이 있어 25행이 되는 글을 썼다고 하여 상도 타고 문예지에도 실린다면? , 등단의 과정이 좀 더 엄격해지지 않으면 시인의 폭발적인 증가를 가져올 수 있다.

 

사진을 본인이 찍어야 디카시는 성립 가능한 것인데, 인터넷상에서 찾아낸 사진을 도용하는 경우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사진 합성이 얼마든지 가능한 시대이므로 타인이 찍은 사진을 합성해 출품하는 경우, 그것을 사전에 막을 방법은 사실상 전무하다. 활자 부분은 검색할 수라도 있지만 사진은 원천적으로 사전 검색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손창현 같은 희대의 사기꾼이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하동 날다라는 제목의 시를 써내 대상으로 일단 확정되었지만 주최측 홈페이지 게시판을 통해 대상으로 선정된 시가 표절이라는 제보가 있어서 당선 취소 통보를 하였다. 5행 중 4행이 기존의 가요를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었다. 그랬더니 손창현은 공모 주최인 한국디카시연구소의 소장과 사무국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다.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인 나도 참고인으로 재판정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소설 전재(표절이 아니라 全載였다) 사건이 터져 그는 화제의 인물이 되었고 앗 뜨거워하면서 소송을 취하하였다. 아주 재미있을 희대의 재판이 열리지 않아 내심 서운하였다.

 

나는 내 블로그에 이 사건을 보도된 대로 알렸더니 당사자가 비밀댓글로 소송을 취하했으니 내 글도 내려달라고 간청을 하였다. 사진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갖는 사람이 있다고 했더니 그는 그 사진은 제가 구글링을 통해 다른 분에게 저작권이 있는 사진을 무단으로 퍼온 것이 맞습니다.”라고 고백을 하였다.

 

어처구니없는 일은 또 있었다. 대상 다음인 최우수상은 사진이 자기 사진이 아니었다. 이 또한 시상식 전에 게시판에 올려놓았더니 제보가 들어왔다. 그 사진이 수상자 당사자가 찍은 것이 아니니 확인을 해보라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인터넷상에 돌아다니고 있는 꽤 유명한 사진이었다. 사진 공모전 입상작이 아닌가 한다. 폭우가 퍼붓고 있는데 할머니가 가판을 거두지 않고 그냥 파라솔 밑에 앉아 있다. 자신이 찍은 사진이 아님이 분명하기에 수상은 당연히 취소가 되었다.

 

 

이런 사진은 그래도 인터넷상에서 찾아냈기에 수상을 취소할 수가 있었지만 자신의 가족이나 지인이 찍은 사진을 내가 찍었다고 하면 누가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작품 창작의 순수성이 얼마든지 훼손될 수 있는 것이 디카시이다.

 

시 대부분이 25행인데, 이것에는 무슨 문제가 없을까? 시가 촌철살인에 정문일침이고 사진이 일목요연인 것은 좋은데 작품성의 비중을 시에 두기가 참으로 애매하다. 그러므로 사진과 활자의 조화에 신경을 써야 한다. 사진이 옆에 있다는 이유로 시 자체가 신통치 않은데 이건 시가 아니야가 모두 다 이것도 시야라는 면죄부를 받는다면 시의 질적 저하가 가능하고, 이것이 가장 우려된다. 이 일들은 사진과 시 모두 수상자 발표 전에 저작권 확인 작업이 필요함을 말해준 상징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시집이 난해하고 무진장 사변적이고 길기도 길어 도무지 판매되지 않는 이 시대에 디카시는 새로운 돌파구임에 틀림없다. 독자의 뇌리에 디카시는 그야말로 잊히지 않는 한 장면이자 하나의 의미가 될 수 있다. 해외에서도 디카시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천주교 수원교구 사진가회에서 2020127일에 발간한 포토에세이 제6Aperture를 갖고 있는데 사진이 정말 좋다. 포토에세이라 짧은 것은 3, 긴 것은 10여 행이 된다. 디카시에 대한 개념이 없는 이들이 쓴 에세이라 어떤 글은 감상문이고 어떤 글은 경구에 가깝다. 이들이 시 창작을 배우면 사진들이 워낙 좋아서 디카시의 수준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이들 사진작가들의 사진전은 1999년부터 지금까지 23회를 했으니 사진 실력은 말해 무엇하랴. 시의 길이를 꼭 5행 이내로 제한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Aperture를 보면서 해보았다. 하지만 4, 5행 정도가 제일 짜임새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계간 디카시에는 오홍진의 소시집 해설이 자주 실렸는데 시카시 비평의 최상급이 아닌가 한다. 독자 제현의 일독을 권하는 바다. 김왕노 시인은 디카시 계의 선두주자인데 자신의 시론인 문학의 진화, 시의 아방가르드인 디카시(디카시2020년 여름호)에다 각종 디카시 공모전 수상작 8편을 언급하면서 디카시의 가능성을 타진하였다. 아주 소중한 글이다.

 

이외에도 김종회의 세계 무대로 진출하는 디카시, 구모룡의 디카시라는 장르, 오민석의 디카시의 미래를 위한 세 가지 메모, 김남호의 디카시, 무엇이 더 중요한가?, 이병헌의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디카시등 디카시에 대한 이론이 축적되고 있는 것도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공모전들은 좀 더 엄정한 여과 과정을 거치면 좋겠고(심사를 엉터리로 했던 사람이라 사실 할 말은 아니지만), 작품성 향상을 위해 여러 사람의 노력이 행해진다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일본의 하이쿠는 몰라도 한국의 디카시는 알게 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출처] 디카시의 발전 방안을 논함|작성자 이승하

https://blog.naver.com/shpoem/223059497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