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대 1차대전은 인류에게 전쟁의 가공할 참혹함을 뼈저리게 각인시켰다. 하지만 불과 20여 년 후 세계는 더욱 거대한 참화인 2차대전에 휘말렸다. 엄청난 규모의 비극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전쟁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듯 보였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전쟁을 권력과 이권 유지의 수단으로 삼는 세력이 있으며, 역사는 비슷한 참상이 반복될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20세기 전반기는 전체주의가 지배한 시대였다. 파시즘, 나치즘, 스탈린주의 같은 극단적 이념이 대중을 현혹하며 등장했다. 이 사상들은 하나같이 순정하고 영원한 유토피아를 약속했지만, 혐오와 배척을 조장해 사람들을 전쟁으로 내몰았다. 전체주의 선동가들은 대중을 조작하고 서로 적대하게 만들었으며, 그 끝은 처참한 전쟁과 끔찍한 학살이었다. 광기의 소용돌이가 지나간 뒤 사람들은 비극을 되돌아보며 원인을 탐구하고, 같은 오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숙고했다. 유토피아적 이념에 대한 맹신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것을 견제하기 위해 개방적 태도와 민주적 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성찰이 이어졌다. 정치철학자 칼 포퍼가 1945년 발표한 ‘열린 사회와 그 적들’도 그런 고심의 산물이다.
포퍼는 ‘열린 사회’와 ‘닫힌 사회’를 비교했다. 닫힌 사회는 절대권력과 배타적 이념이 지배하며, 개인의 사상이 이념, 국가, 지도자의 목표에 종속되는 체제다. 반면 열린 사회는 다양한 의견과 가치를 존중하며, 자유로운 비판과 토론을 보장한다. 그는 닫힌 사회에서는 내부 비판이 차단되면서 문제 해결이 불가능해지고, 권력이 통제되지 않아 독재로 치닫는다고 지적했다. 그에 반해 열린 사회에서는 비판과 반론을 통해 정책을 수정하고 오류를 교훈 삼아 점진적으로 발전해 갈 수 있다고 봤다.
그렇다면 열린 사회는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까. 무엇보다 구성원의 자유와 제도적 민주주의가 보장되고 조화를 이뤄야 한다. 법치주의와 민주적 절차를 통해 사회가 운영돼야 하며, 권력자는 정당한 절차에 따라 선출되고 통제받아야 한다. 독재나 엘리트 지배의 위험으로부터 시민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의회와 사법권 독립 같은 제도적 장치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열린 사회조차 극단주의와 전체주의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않다. 민주주의적 관용을 악용해 민주주의 자체를 무너뜨리려는 세력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열린 사회가 무엇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생겨난다. 포퍼는 이것을 ‘관용의 역설’이라고 표현했다. 극단주의와 전체주의를 무제한적으로 허용할 경우 역설적으로 관용 자체가 파괴된다고 경고했다. 히틀러의 나치가 민주적 절차를 이용해 권력을 장악한 사례처럼 열린 사회의 가치와 제도를 악용하는 세력을 방치할 경우 민주주의가 무너질 수 있다고 봤다.
열린 사회는 저절로 유지되지 않는다. 그것은 비판적 사고와 법치주의, 점진적 개혁 속에서 끊임없이 재확인되고 조정돼야 하는 과정이다. 열린 사회를 유지하려면 전체주의적 이념이나 폭력적 선동처럼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하는 요소를 제도적으로 제한해야 한다.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을 허용하되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시도에는 단호히 대응할 필요가 있다.
자유와 민주주의는 공기와 같다. 디지털 기술 발달과 정보의 무한 확산, 집단 지성의 일반화 속에 당연한 전제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런 당연함이 역사적 경계를 흐리게 하며, 과거에서 배우려는 각성을 둔화시킨다. 경계심을 잃은 사회는 전체주의 유혹에 다시 취약해지고, 역사는 반복될 위험에 노출된다. 인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때로는 더 심각한 형태로 비극을 재현하기도 한다. 이 시점에서 포퍼의 경고를 새삼 되짚어보는 이유다.
민주적 절차를 통해 등장한 전체주의 정권이 자유를 억압하고, 체제 내부의 비판을 차단하며 사회를 통제한 사례는 드물지 않다. 45년 만의 비상계엄 선포를 경험하면서 ‘열린 사회의 적들’에 대한 관용의 역설을 다시금 고민하게 된다.
허영란(울산대 교수·역사문화학과)
출처 :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1737594948&code=11171427&cp=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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