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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와 음모론, 그리고 폭동 [펌]

너럭바위 一石 2025. 1. 25. 23:23

2021년 미국과 2023년 브라질의 폭동은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①모두 현직 대통령이 대선에서 패하자 벌어진 일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은 선거 결과가 확정되는 날 의사당에 난입했고,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 지지자들은 군부대에 몰려가 선거 결과를 뒤집는 쿠데타를 촉구하다 대통령궁을 점거했다. ②이들은 선거가 조작됐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극우 단체 큐어넌이 집대성한 ‘딥 스테이트 음모론’(비밀조직 딥 스테이트가 미국을 전복하려 선거 부정을 획책한다는)을, “소스코드를 내놓으라”며 정부 청사를 헤집고 다닌 보우소나루 지지자들은 ‘전자투표 음모론’(전자 투개표 시스템에 디지털 조작이 이뤄졌다는)을 신봉했다.

③이런 음모론은 극심한 정치 양극화 토양에서 세를 불렸다. 당시 미국 대선은 개표 나흘 만에야 승패가 갈릴 만큼 초박빙 진영 대결이었고, 브라질 대선도 50.9%(룰라) 대 49.1%(보우소나루)의 근소한 격차였다. 갈등 조정의 정치가 작동했다면 인터넷 구석에 머물렀을 허무맹랑한 가설이 심리적 내전의 혐오 정치판에서 진영의 신념이 됐다. ④그런 음모론을 부추기고 퍼뜨린 건 바로 트럼프와 보우소나루였다. 트럼프는 2019년부터 큐어넌의 주장을 트위터에 공유하고 우편투표를 사기극이라 부르며 부정선거 음모론의 확성기 역할을 했다. 보우소나루는 아예 음모론의 원작자였다. 하원의원이던 2014년 자기 진영 대선 후보가 근소하게 패한 뒤부터 선거마다(심지어 자신이 승리한 대선도) 전자투표가 조작됐다는 주장을 폈다. 아무 근거 없는 가설은 인터넷과 SNS를 떠돌며 살이 붙은 지 8년 만에 국민 절반을 선거 불신의 집단망상에 빠뜨렸고, 결국 폭동을 불렀다.

비상계엄 이후 한국에서 벌어진 사태도 ‘양극화+음모론=폭동’이라 요약될 미국·브라질 전례의 공통된 키워드가 전부 담겨 있다. 현직 대통령의 선거 패배(지난 총선은 사실상 대선 연장전이었다), 극우 유튜버들이 퍼뜨려온 부정선거 음모론, 그것을 증폭시킨 극단적 정치 양극화, 음모론을 기꺼이 수용해 정치 전면에 내세운 대통령(윤석열 대통령은 대국민담화와 탄핵심판에서 이를 공개적으로 제기하며 부정선거론의 최대 확성기가 됐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맞물려 일어난 서울서부지법 집단난동. 요즘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4년 전 트럼프 지지자 구호였던 ‘Stop the Steal’(선거 도둑질 말라) 팻말을 들고 있다. 대통령의 음모론 유포는 한국 정치의 양극화 문제를 정치세력의 권력투쟁이나 진영의 이념 대결을 넘어 집단망상에 법질서가 무너지는 지경까지 악화시켰다.

미국은 양극화와 음모론의 합병증을 치유하는 데 실패했다. 복수를 다짐한 트럼프에게 다시 권력을 주었고, 4년 전 폭도들은 그에게 면죄부를 받았다. 지금 국민의힘이 택한 노선은 이런 트럼프를 롤모델로 여기는 듯하다. 윤 대통령 지지세력을 ‘아스팔트 십자군’이라 칭하고, 극우 유튜버를 언론이라 추켜올리고, 음모론 확산을 보수 결집이라 믿으며 그들에게 기대고 있다. 양극화의 분열상과 음모론의 집단망상을 바로잡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토대로 트럼프처럼 권력을 회복하려 한다. 유죄 판결에도 선출된 피의자 대통령 트럼프는 계엄 전만 해도 피의자 당대표를 둔 더불어민주당의 롤모델로 더 어울렸는데, 이제 여야가 나란히 ‘트럼프처럼’을 추구하는, 그것도 부정적인 면을 하나씩 골라 따라하는 기이한 상황이 됐다.

8년 만에 다시 맞닥뜨린 대통령 탄핵 정국은 지난번과 너무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권한대행의 대행, 대통령 관저 대치, 현직 대통령 구속 등 초유의 사건이 잇따랐다. 한 번 해본 학습효과에 그사이 더 망가진 정치와 더 깊어진 분열이 더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희망을 찾자면 어쨌든 꾸역꾸역 민주적 수습 절차를 밟아가고 있다는 점인데, 평탄치 않은 그 길에 ‘불복’의 함정이 깊게 파여 있음을 법원 난동 사태에서 확인했다. 민주주의의 두 축, 법치와 선거가 부정당하는 현실은 미국이 실패했듯이 사람을 바꿔서 치유할 수 있는 선을 넘었다. 양극화와 음모론의 토양을 질적으로 바꿔 원인을 제거하는 권력구조와 선거제 개혁이 불가피하다. 이 상황에서 개헌을 늪이라며 꺼리는 정치인은 자격이 없다. 불복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그 늪을 건너야만 한다.

태원준 논설위원(wjtae@kmib.co.kr)

출처 :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1737617366&code=11171394&cp=n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