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사/시

누가 고양이 입속의 시를 꺼내 올까 / 최금진

너럭바위 一石 2024. 9. 20. 23:44

혓바닥으로 붉은 장미를 피워 물고

조심조심 담장을 걷는

언어는 고양이

깨진 유리병들이 거꾸로 박힌 채

날 선 혓바닥을 내미는 담장에서

줄장미는

시뻘건 문장을 완성한다

경사진 지붕을 타 넘으면

세상이 금세 빗면을 따라 무너져 내릴 것 같아도

사람은 잔인하고 간사한 영물

만약 저들이 쳐놓은 포획틀에 걸리기라도 한다면

구름으로 변장하여 빠져나올 것이다

인생무상보다

더 쉽고 허무한 비유는 없으니

이 어둠을 넘어가면

먹어도 먹어도 없어지지 않는 달덩이가 있다

거기에 몸에 꼭 맞는 둥지도 있다

인간에게 최초로 달을 선사한 건 고양이

비유가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테니

흰 접시 위에 싱싱한 물고기 한 마리 올려놓는다

언어는 지느러미를 펄럭이며

하늘로 달아나고

마을은 접시처럼 환하다

가장 높은 지붕위엔 고양이 한 마리

발톱의 가시로 달덩이를 희롱하고

입으로는 붉은 장미꽃들을 활짝 피워낸다

야옹, 나는 장미다

 

 

웹진 '시인광장'은 12회를 맞이한 '올해의좋은시' 상 수상자에 최금진 시인이 선정됐다고 10일 밝혔다.

'시인광장'은 자사와 외부 전문가 위원들이 추천한 '2018년도 올해의 좋은 시' 500편을 대상으로 시인들의 블라인드 테스트를 두차례 거쳐 최종 12편을 추렸다. 이 12편을 두고 다시 시인들이 무기명 투표를 해 최금진 시인의 '누가 고양이 입속의 시를 꺼내 올까'를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최금진 시인은 젊은 감각의 그로테스크한 상상력과 이미지를 바탕으로 한 작품을 쓰며, 특유의 균형감과 절제된 표현으로 안정감을 유지하는 데 더해 독창성이 돋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최금진 시인은 "지리와 멸렬이 따라주는 독주를 들이키고 있을 때 누군가 나를 불렀다. 와서 네 몫으로 남겨진 사랑을 거두어 가라고. 아직 이른 초저녁에 불 끄고 누운 나를 불러주다니… 아프고 또 감사한 일이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시상식은 내년 1월 5일 오후 5시에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열린다.

 

입력2018.12.10 연합뉴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0517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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