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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삼 4 / 시(詩) 8편
1 어부(漁夫) 바닷가에 매어둔 작은 고깃배 날마다 출렁거린다 풍랑에 뒤집힐 때도 있다 화사한 날을 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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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어려운 입지에 처해 있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나돌았지만 애당초 시와 시인은 세상의 주류이거나 조명을 받는 위치에 있지 않다. 물질 사회에서 시와 시인의 ‘별 볼일 없음’은 어쩌면 당연한 노릇이다. 시인은 언제나 음지에 존재하며, 추수를 마친 뒤 쓸쓸한 밭이랑에서 떨어진 이삭을 줍는 노인의 늙은 연민과 낡은 우수와 같다.
잘나가는 일부 시인이 없지는 않겠으나 대부분의 시인은 ‘마이너리그 소속’이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2만 명도 넘는다는 시인 가운데 줄잡아 98%는 마이너리그에도 끼지 못하는 흑싸리 껍데기 등외품 시인이다. 물론 나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이를테면 독자로 남아야 마땅할 존재인 것이다.
그래도 ‘삼류를 자처했던’ 김종삼 시인 정도면 <묵화> 하나로도 족히 베스트20 안에 꼽히는 시인의 표상 가운데 한 분일 것이다. 생활능력은 별로였겠지만 바흐를 즐겨 들었고 모리스 라벨을 좋아했다.
흔히 평판 좋은 사람을 일컬을 때 남의 험담하는 걸 보지 못했다는 증언을 덧붙이곤 한다. 그러나 명백한 나쁜 짓이나 잘못되어 가는 정치까지 눈감아주는 아량을 포함해서는 곤란하다. 시인이 ‘툭하면 쌍놈의 새끼 소리를 연발했던’ 것은 시인본색이라 할 수 있다.
그가 가장 혐오했던 것은 속물근성이다. 동아방송국 근무 시절 직장의 한 아첨꾼을 박치기하려다 빗나가 지프차를 들이받는 바람에 이마를 열 바늘이나 꿰맨 일화도 있다. 최근의 양 아무개 같은 인간이 김종삼에게 걸리면 아마 국물도 없었을 것이다. 공산주의를 싫어하면서도 거창학살사건 때는 통곡하며 시를 쓴 일도 있다.
우리 시단에서 ‘가장 순도 높은 순수시’를 쓴 시인이며, ‘시에 있어서 지독한 구두쇠’인 그의 시는 짧은 것이 특징이다. 보들레르도 ‘긴 시는 짧은 시를 쓸 수 없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김종삼은 보헤미안이자 ‘고독한 배가본드’였고 무산자였다. 20년 직장을 그만둔 후로는 시와 음악과 술로만 살았다. 잦은 음주로 인한 간경화로 1984년 12월 세상을 떠났다. ‘나같이 인간도 덜 된 놈이 무슨 시인이냐, 나는 건달이다, 후라이나 까고’ 라며 내뱉기도 했다. 하지만 ‘非詩일지라도 나의 직장은 詩이다’라고 스스로 밝혔듯 평생 시를 껴안고 살았다.
다음은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란 시다. 그를 진정한 시인으로 기억하는 또 다른 이유이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녁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 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 아닌 시인이라고.
/ 권순진 시인
김종삼(金宗三, 1921년 ~ 1984년)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나 27세에 월남. 일본 도요시마 상업학교를 졸업했다. 1951년 시 <돌각담>을 발표한 후 시작에 전념. 1957년 김광림 등과의 3인 시집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를 발간했다. 이후 초기의 <현대시> 동인으로 활약했으며 <종 달린 자전거>, <시사회>, <다리 밑>, <원색(原色)> 등을 발표했으며, 1968년 문덕수(文德守)·김광림과의 3인 연대시집 <본적지(本籍地)>, 이듬해 첫 개인시집 <십이음계(十二音階)>를 간행했다. 그의 시는 대체로 동안(童眼)으로 보는 순수세계와 현대인의 절망의식을 상징하는 절박한 세계로 나눠볼 수 있으며 고도의 비약에 의한 어구의 연결과 시어가 울리는 음향의 효과를 살린 순수시들이다. 1971년 현대시학상, 1983년 대한민국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북치는 소년>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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