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사/시

팽나무가 쓰러, 지셨다 / 이재

너럭바위 一石 2024. 8. 21. 17:46

우리 마을의 제일 오래된 어른 쓰러지셨다
고집스럽게 생가 지켜주던 이 입적하셨다
단 한 장의 수의, 만장, 서러운 哭(곡)도 없이
불로 가시고 흙으로 돌아, 가시었다
잘 늙는 일이 결국 비우는 일이라는 것을
내부의 텅 빈 몸으로 보여주시던 당신
당신의 그늘 안에서 나는 하모니카를 불었고
이웃마을 숙이를 기다렸다
당신의 그늘 속으로 아이스께끼장수가 다녀갔고
방물장수가 다녀갔다 당신의 그늘 속으로
부은 발등이 들어와 오래 머물다 갔다
우리 마을의 제일 두꺼운 그늘이 사라졌다
내 생애의 한 토막이 그렇게 부러졌다

[위대한 식사, 2002]

 

나는 그동안 예의 ‘팽나무’를 소재로 세 편의 시를 썼다. 
회초리가 되어 내 유년의 종아리를 아프게 다녀간 그에 대한 푸른 추억과 다 늙어 내부를 텅 비운 채 시름시름 앓던 그에게서 얻은 생의 성찰과 지상의 삶을 마감하고 火(화)水(수)地(지)風(풍)으로 돌아간 그에 대한 회한의 정을 시의 형식으로 담아냈던 것이다. 
위 편지 형식의 글은 그에 대한 이러한 나의 총체적 감정을 담은 것이다. [나의 대표시를 말한다. 99~102, 이재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