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뭔가 말하면
모두가 바로 웃으며 달려들어
“꿈같은 이야기는 하지 마” 해서
나조차도
그런가 싶어진다.
그래도 나는
포기할 수 없어서
그 꿈같은 이야기를
진심으로 꿈꾸려 한다
그런 터라
이제 친구들은 놀리지도 않는다
“또 그 이야기야!” 하는 투다
그런데도 꿈을 버리지 못해서
나 홀로 쩔쩔매고 있다.
-김시종(1929~) (곽형덕 옮김)
나도 내 꿈을 여태 버리지 못해서 홀로 쩔쩔매고 있다. 버릴 수 있다면 꿈이 아니겠지. 꿈이 없다면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라고 어느 시인이 말하지 않았던가. “다다를 수 없는 곳에 지평이 있는 것이 아니다. / 네가 서 있는 그곳이 지평이다”라는 묵직한 서문으로 시작하는 재일(在日) 시인 김시종의 시집 ‘지평선’에서 내가 가장 편안히 감상할 수 있는 시는 ‘꿈같은 이야기’였다.
그의 ‘꿈같은 이야기’를 나는 알 수 없고 상상할 수도 없지만, 그 (꿈의) 간절함만은 고스란히 전해진다. 김시종은 부산에서 태어나 제주도에서 자랐고 1948년 4·3 항쟁에 참여한 뒤 일본으로 밀항해 1950년 무렵부터 일본어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한국어로 번역된 그의 시들을 읽으며 경계인으로 사는 슬픔과 분노를 넘어선 어떤 힘이 느껴졌다. 그 어두운 활기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한 자의 자신감이 아닐까.
최영미 시인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3/07/10/YL4FFLLO4ZCEPG5VUGNYHUACWI/
[최영미의 어떤 시] [128] 꿈같은 이야기
최영미의 어떤 시 128 꿈같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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