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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물감 / 반칠환 시인의 디카시

너럭바위 一石 2024. 8. 11. 15:38

내 안의 물감(반칠환 시인)

 


수많은 발길이 스쳐갔지만 무섭지 않았어

아홉 번 밟혀도 열 번 새 잎을 낼 작정이었으니까

파릇하게 웃으니 사람들도 피해가더군

노랑 물감을 어디서 구할까도 걱정하지 않았어

내가 피울 꽃의 빛깔은 내 안에 있더라니까



-반칠환 시인의 ‘내 안의 물감’



산기슭 밭에 초록 풀이 뒤덮여 있었다. 다른 밭에도 듬성듬성 푸르른 것으로 보아 농작물은 아닌 듯했다. 개망초였다. 밭에 그 풀이 나면 농사를 망친다고 하여 개망초라 부른다. 번식력이 매우 강하다. 개망초처럼 생명력 강한 풀들이 있다. 질경이, 쑥부쟁이, 민들레도 그렇다. 쉽게 멸종하지 않는다. 환경적 여건에 의해 피고 지는 것이 아니라, 기막힌 악조건 속에서도 끝끝내 살아내는 생명력은 ‘내가 피울 꽃의 빛깔은 내 안에’서 만들어낸다는 낙천적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됨도 마찬가지 일터이다. 누구나 유일한 ‘내 안의 물감’을 가지고 있을 것임에도 어떤 이는 세상과 대처하여 독설을 내뱉고 자신 또한 그 독설에 베인다. 어떤 이는 자신의 물감을 수용과 포용으로 번지게 한다. 과연 나는 민들레처럼 살고 있는가.

시인·두원공대 겸임교수

출처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http://www.gnnews.co.kr)

 

 

1964년 충북 청주 중고개에서 태어났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199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2002년 서라벌 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 '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사랑', '웃음의 힘'. 시선집 '누나야'.

시평집 '내게 가장 가까운신, 당신'.

장편동화 '하늘궁전의 비밀', '지킴이는 뭘 지키지?'.

인터뷰집 '책, 세상을 훔치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