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사/시

청산을 부른다 4 / 윤 중 호 (1956~2004)

너럭바위 一石 2024. 7. 31. 11:31

 

청산(靑山), 너머에 또 청산,
너머 그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
살랑대는 바람도 푸르게 자라서
길이 되는 곳
나무등걸, 칡넝쿨, 솟을바위,
세상이 버린 멍든 가슴들이
막아선 길 끝
사람이 만든 길 끝에 서서,
울먹이며
청산을 부른다.

 

-시집 〈청산을 부른다〉(1998) 중에서

 

현실이 힘들고 각박할수록 사람들은 이상향을 찾는다. 도연명의 ‘무릉도원’이나, 제주도의 ‘이어도’, 지리산의 ‘청학동’ 전설 등이 그런 내용일 것이다. 낙원을 갈망하는 인간의 마음은 본능적이어서 역사 속에서 늘 나타났고, ‘청산’도 낙원의 한 표상으로 오르내렸다. 고려가요 〈청산별곡〉의 ‘청산에 살어리랏다’가 그것을 잘 보여준다.

 

문제는 누가, 왜 ‘청산’을 찾는가 하는 점이다. 시인은 ‘세상이 버린 멍든 가슴들이’ ‘사람이 만든 길 끝에 서서’ ‘울먹이며’ ‘청산을 부른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청산이 버려진 자들에게 막다른 상황에서 주어지는 구원의 장소가 된다는 점을 의미한다. 곧 ‘청산을 부르’는 것은 핍박받는 자들이 현실의 모순과 불의를 부수고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하려는 의지의 표출인 셈이다. 하여 청산은 혁명의 깃발이다.

 

김경복 평론가

 

출처 : https://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24073017555840207

 

 

윤중호(195625~200493)

 

1956년 충청북도 영동군 심천에서 태어나 숭전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84년 계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했으며, 이은봉 등과 삶의 문학동인으로 활동했다. 잡지사 기자, 출판 편집자 등의 일을 하면서 시와 동화를 썼다. 20049월 갑작스런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김종철은 윤중호의 유고 시집 고향 길의 발문 우리가 모두 돌아가야 할 길에서 윤중호를 사람을 아끼는 게 제일이라는 믿음에 투철했고, 무엇보다도 사회의 밑바닥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에서 행복을 느낀 철저한 비근대인이었다.”고 평했다.

 

, 시집이 한국 현대시 역사 전체를 놓고 볼 때도 드물게 뛰어난시적 성취를 보여주며, “크게 보면 백석의 <사슴>이나 신경림의 <농무>의 맥을 잇는 세계이면서도 어떤 점에서는 그 시집들보다도 한 걸음 더 나아간 진경을 보여주고있다고 호평했다.

 

송성영은 유고 시집 고향 길을 읽으면 사람들과 더불어 윤중호가 남긴 소중하고 고마운, ‘따뜻한 죽 한 그릇을 꾸역꾸역 퍼 마시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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