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불교

업의 과보

너럭바위 一石 2023. 1. 2. 14:01

인간은 무상이 지배하는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에 매 순간 태어나고 죽는 것을 반복한다. 이러한 반복이 한 인생의 마지막에도 똑같이 계속된 뒤에 다음 생으로 태어나서 다시 똑같은 무상을 반복한다. 이처럼 현생의 일어나고 사라지는 반복이 다음 생으로 옮겨가서 똑같이 반복되므로 사실상 죽음이란 없고 무상의 연속만 있다. 그러므로 한 인간이 죽는 것은 없고 단지 일시적인 현상이 일어나서 일시적으로 소멸하는 시작과 끝의 연속만 있다. 이러한 윤회의 과정에 자아가 있어서 다음 생으로 옮겨가는 것이 아니다. 오직 매 순간 원인에 의해서 결과로 옮겨가는 현상만 있다. 이때 옮겨가는 것이 업 때문에 생긴 인과응보가 옮겨간다. 이것을 연기의 회전이라고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옮겨가는 것이 같은 것이라고 할 수도 없고, 다른 것이라고 할 수도 없다. 마음이 일어나서 사라졌지만, 마음에 있는 종자가 다음 마음으로 옮겨가기 때문이다. 이때의 마음의 종자가 바로 업의 인과응보다. 일생의 마지막 마음이 일어나서 사라질 때 살아있는 일생에 했던 업 중에서 두드러진 업이 나타나 다음 생으로 이끈다. 그러므로 죽음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살아서 어떤 업을 짓는가를 두려워해야 한다.

 

인간이 살아서 선한 일을 하면 선한 인과응보를 받고 악한 일을 하면 악한 인과응보를 받는다. 이러한 선악의 인과응보가 옮겨 가는 중에 가장 먼저 나타나는 업의 인과응보가 있다. 그러므로 업이 먼저 나타나는 순서가 있다. 이처럼 인간이 살아서 한 행위에 대한 선악의 결과에 따라 업이 나타나는 순서가 다르다. 첫 번째로 나타나는 인과응보는 무거운 업이라고 한다. 무거운 업은 중대한 업으로써 살아서 한 행위의 비중이 가장 큰 업이다.

 

비중이 큰 선한 일이나 가장 심각하고 나쁜 행위를 한 악업이 여기에 속한다. 이러한 선업 중에 가장 큰 선한 일은 무상, , 무아의 통찰 지혜가 나서 집착이 끊어지면 더는 태어날 원인이 사라져 태어나는 결과가 없다. 다음 선업 중에 선정수행을 하면 천상의 선정에 태어나고 욕계 천상과 인간으로 태어나는 인과응보를 받는다. 하지만 악업이 먼저 나타날 때는 부모를 살해한 업, 아라한을 살해한 업, 부처님에게 상해를 입힌 업, 승가를 분열시킨 업이 있다. 이런 악업은 가장 강력한 인과응보가 나타나므로 반드시 지옥에서 태어난다.

 

업이 나타나는 우선순위 중에서 두 번째로 나타나는 업은 가까운 업이다. 가까운 업은 인간이 죽을 때 마지막 마음에 따라서 나타나는 업이다. 죽는 순간에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서 깨어있으면 다음 생에 가장 좋은 선한 과보를 받는다. 이때 무상, , 무아의 지혜가 나면 윤회를 끝내는 깨달음을 얻어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 또는 과거에 선한 일을 한 것을 기억하는 것도 가까운 선업의 과보에 해당한다.

 

죽을 때 마지막 마음이 다음 생으로 태어나는 재생영결식으로 그대로 옮겨가므로 무거운 업이 나타나지 않으면 가까운 업이 다음 순서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임종 시에 마음이 혼란하지 않도록 조용히 하면서 살아서 선한 행위를 한 것을 기억하도록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 만약 슬퍼서 울거나 붙잡고 매달린다면 선한 일을 기억할 수 없고 오히려 혼란한 마음으로 집착과 미련을 남기므로 바람직하지 않다. 이와 반대로 선한 사람이 갑자기 나쁜 상황에 직면하여 나쁜 일을 기억하거나 두려워하면 악업의 인과응보를 받는다.

 

세 번째 순위로 나타나는 업은 습관적인 업이다. 습관적인 업은 살아가는 동안 좋아하는 것을 기억해서 회상하는 경우다. 선한 일을 많이 했으면 선한 일을 한 것에 대한 기억이 업으로 나타난다. 악한 일을 많이 했을 때 악한 일을 한 것에 대한 기억이 업으로 나타난다. 습관은 잠재의식으로 일생을 살면서 한 행위이므로 일상적인 삶의 기억이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만약 첫 번째 무거운 업과, 두 번째 가까운 업이 나타나지 않으면 세 번째 습관적인 업이 나타나서 다음 생을 결정한다.

 

네 번째 마지막으로 나타나는 업은 축적된 업이다. 축적된 업은 앞에서 먼저 나타나는 세 가지 업에 포함되지 않은 모든 업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네 번째 업은 인간뿐만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생명이 지닌 업이 나타나는 축적된 업이다. 감각적 욕망이 있는 세계의 생명이 지은 악한 업이 있으며 또 선한 업이 있다. 그리고 색계와 무색계의 생명이 지은 선한 업이 나타나서 다음 생이 결정된다.

 

이처럼 인간은 물론이고 존재하는 모든 생명도 저마다 개인이 지은 업에 의해 다음 생이 결정된다. 그러므로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오직 자신의 선업과 악업으로 자신의 삶을 결정한다. 지금보다 더 나은 괴로움이 없는 삶을 살거나 괴로움뿐인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나려면 자신의 몸과 마음을 알아차려서 지혜를 얻는 것이 최상의 인과응보다. 이러한 실천적 삶은 남과 나눌 수 없는 나만의 문제이므로 내가 선한 행위를 하는 것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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