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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학수의 문화풍경] 누가 소크라테스를 죽였나

너럭바위 一石 2025. 2. 28. 14:09

기원전 399년 봄 아테네의 광장에서 소크라테스의 재판이 열렸다. 시민 2명이 소크라테스를 기소했는데, 혐의는 신에 대한 불경죄와 청년 세대의 정신적 부패 조장이다. 재판은 하루 만에 끝이 났고, 501명으로 구성된 배심원은 피고에게 사형 판결을 내렸다. 재판 과정은 민주적 절차에 따라 이루어졌으나, 피고는 아무 죄가 없는데도 처형되었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곳곳에서 사람들에게 철학을 가르쳤다. 그에게 철학은 인생의 교훈이나 삶의 지혜를 탐구하는 연구가 아니라, 편견을 제거하고 사고를 깊게 하는 문답의 실천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혼란스럽거나 근거가 부족한 신념을 다소 가지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그런 의견, 판단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그것의 토대를 깊숙이 파헤치는 지성적 활동을 철학이라고 생각하였다.

 

국민에 의한 통치라는 ‘민주주의’

비합리적 편견 등에 휘둘릴 수도

사유와 이성의 훈련 뒷받침 필요

 

당시 아테네 사회에는 잘사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며, 잘살려면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세속적 신념이 팽배해 있었다. 이것을 부정하거나 다른 가치관을 제시하는 것 대신, 소크라테스는 학생들에게 먼저 잘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대체로 학생은 잘산다는 것은 즐거운 인생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소크라테스는 즐겁게 살지만 쾌락에 빠져 건강을 잃은 사람의 사례를 들면서, 그런 삶도 잘사는 것이냐고 묻는다. 이제 학생은 이전의 의견을 발전시켜, 잘산다는 것은 절제하는 삶이라고 답한다. 다시 소크라테스는 절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다. 학생은 제대로 절제하려면 무엇이 자신에 이롭거나 해로운지 알아야 한다고 답한다. 다시 문답은 이어진다. 이런 토론 방식을 문답법 또는 변증법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소크라테스에게 철학 그 자체이다.

 

변증법을 배우고 실천하면서 아테네 사회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청년들은 자신의 사고가 얼마나 얕은지 깨닫고 더욱더 공부해야 한다고 마음먹게 되며 동시에 부모나 교사, 전통을 이전처럼 존중하지 않게 되었다. 반면 아테네의 기성세대들은 소크라테스 때문에 청년들의 심성이 비뚤어졌다고 믿고 소크라테스를 미워하여 아테네에서 제거하려고 하였다. 불경죄란 국가가 믿는 신을 조롱하거나 무시하는 자세인데, 실제로는 전통이나 조상, 부모를 존경하지 않고 경멸하는 태도와 행동을 가리킨다. 소크라테스의 혐의 두 가지는 서로 깊은 연관이 있는 것이다.

 

아테네에서 불경죄로 처벌된 유명인은 더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재판을 받기 전에 도망쳤고, 알키아데스는 사형 판결을 받았지만 도주했으며, 프로타고라스는 사형 판결을 받았거나 추방되었다. 이런 판결은 모두 민주주의적 절차를 따랐다. 민회에서 추첨으로 선출된 배심원들이 투표하여 다수결로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민회는 에클레시아라고 부르는데, 법률을 제정하고 정책을 결정하며, 전쟁을 선포하고, 장군을 선출하고, 민주주의를 해칠 위험이 있는 인물을 투표하여 추방한다. 민회는 18세 이상의 남자는 누구나 참여할 자격이 있었다.

 

민주적 절차가 무고한 사람을 살해한 유명한 사건은 아르기누사이 해전 직후에 벌어졌다. 기원전 406년 아테네 함대는 지금의 튀르키예 해안의 아르기누사이 제도 근방에서 스파르타 해군과 싸워 대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폭풍우 때문에 표류하는 25척의 전함을 구출하지 못했고, 익사한 사람의 시신을 수습하지 못했다.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아테네 민회는 장군 8명을 해임하고 소환하여 재판에 회부하였다. 2명은 도망하여, 6명이 재판을 받았다. 첫날 재판에서 장군들은 나쁜 기상 때문에 생존자를 구출할 수 없었다고 변론하였고, 이것이 민회에 모인 군중들을 설득하고 있었다. 그러나 해가 저물어 재판은 다음 날로 이어졌고, 분위기는 반전되었다. 이날 그 해전에서 구출되지 못하고 익사한 승무원들의 가족들이 재판이 열리는 민회에 참여했던 것이다. 희생자 가족들은 장군들에게 엄한 처벌이 내려져야 한다고 요구하였고, 정치가 칼릭세노스는 더 이상의 토론 없이 장군들이 유죄인지 무죄인지 투표하자고 제안했다. 몇몇 사람은 이 제안이 부당하다고 반대하였으나, 반대자들에게도 장군들이 받을 처벌을 내리겠다고 위협하자 그들은 반대를 철회했다. 이날 재판을 진행하는 민회의 진행자는 소크라테스였다. 그는 충분한 토론 없이 투표하자는 제안에 반대하였으나 투표는 그대로 진행되어 장군 6명은 사형 판결을 받고 처형되었다.

 

민주주의는 그리스 말로 데모크라티아인데, 국민 즉 데모스가 통치한다는 뜻이다. 국민은 편견 또는 질투 같은 감정으로 판단할 수도 있고, 지성으로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둘 다 민주주의이지만, 전자는 타락한 민주주의이고 후자가 진정한 민주주의이다.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도 아테네처럼 타락의 위기이다. 소크라테스는 민주주의의 타락을 경험하였으며, 지성의 훈련을 통하여 진정한 민주주의를 확립하려고 하였다.

 

동서철학 아카데미 숲길 대표

출처 : https://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25022717482394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