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사/시

[시인의 詩 읽기] 간결하고 아름다운 걸음

너럭바위 一石 2025. 2. 10. 13:46

 

 

이 시는 ‘새는 왜 내 입안에 집을 짓는 걸까’라는 독특한 제목을 가진 시집에 실려 있다. 시집 전체에 길·숲·논·새·나무·계절이 가득 담겨 있다. 마음이 답답할 때 어느 페이지든 펼쳐 읽으면 탁 트인 자연을 누비며 바람과 함께 걷는 기분이 든다.

이 시에는 어려운 단어나 난해한 표현이 없다. 시의 쉽고 순한 속성은 ‘걷기’와 비슷하다. 걷기는 쉽게 할 수 있는 일처럼 보이지만 병상에 있다보면 새삼 걷는 일의 놀라움을 알게 된다. 몸을 바로 세우고 팔다리를 흔들며 나아가는 일! 걷고 싶을 때 걸을 수 있다는 건 기적이다. ‘쉽고도 아름답게 쓰인 시’를 보면 감탄하게 된다. 간결한 아름다움은 최상의 것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걷는 사람을 천천히 사랑하는 사람, 시간을 가만히 멈추게 하는 사람, 걸음이 뒤로 밀리는 사람이라 정의한다. 걷기의 본질은 속도에서 벗어난 전진에 있다. 도시에서 걷다보면 쫓기는 기분이 든다. 특히 지하철을 갈아탈 때 인파에 휩쓸려 걷다보면 어디든 도착해 숨고 싶어진다. 반면 자연을 누비는 걸음은 다르다. 바다를 책처럼 읽으며 걷는 걸음, “파도가 걸어오는” 것을 경험하며 걷는 걸음은 어떠한가? 자연을 벗 삼아 걷는 사람은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호흡을 나누고, 시간을 공들여 보내는 사람이다.

이 시의 마지막은 기도문처럼 외우고 싶은 문장으로 끝난다. “홀로 가만히 존재하는 모든 것을 좋아하는 사람.” 자연에 마음을 열어두는 사람, 만물의 기꺼운 고독에 감응하는 사람이고 싶다.

 

박연준 시인

출처 :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662/0000061464?sid=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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