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는 일체법(一切法) 또는 제법(諸法)을 분류하는 여러 방식이 있는데, 그 중에는 크게 유루법(有漏法)과 무루법(無漏法)의 두 가지로 분류하는 방식이 있다. 이 분류 방식은 일체법을 크게 유위법(有爲法)과 무위법(無爲法)의 두 가지로 분류하는 방식과 더불어 불교 전반에서 널리 사용되는 분류법이다.
누(漏, 산스크리트어: āsrava)의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흐르다' 또는 '새어 나오다'이다. 누(漏)는 인간이 번뇌 때문에 각종의 악업을 행하고 그 결과 고(苦)가 그 사람의 삶에 누출(漏出: 새어나옴)되어 나타나고 번뇌와 고의 이러한 누출로 인해 그 사람은 혹(惑) · 업(業) · 고(苦)의 윤회3도(輪廻三道)를 전전하면서 미혹의 세계[迷界]를 유전(流轉: 끊임없이 윤회함)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누(漏)를 곧 번뇌라고 할 수 있다.
번뇌 또는 고(苦)의 누출을 더욱더 증장시키고 있는 상태나 증장시키는 작용을 하는 법들을 유루(有漏, 산스크리트어: sāsrava) 또는 유루법(有漏法, 산스크리트어: sāsrava-dharma)이라고 한다. 이러한 유루의 뜻과 반대의 경우를 무루(無漏, 산스크리트어: anāsravah) 또는 무루법(無漏法, 산스크리트어: anāsravah-dharma)이라고 하는데, 적극적으로 정의할 경우, 번뇌가 끊어진 상태나 번뇌가 끊어지게 하는 작용을 하는 법들을 무루 또는 무루법이라고 한다.
번뇌 또는 고(苦)의 누출을 더욱더 증장시키고 있는 상태나 증장시키는 작용을 하는 법들을 유루(有漏, 산스크리트어: sāsrava) 또는 유루법(有漏法, 산스크리트어: sāsrava-dharma)이라고 한다. 즉, 번뇌와 유루는 흔히 같은 말로 사용되지만, 엄격히 구분하자면, 번뇌는 현재 생겨나 있는 또는 미래에 생겨날 수 있는 번뇌 그 자체를 말하고 유루는 세간 · 출세간의 선법(善法)으로 이끌어가지 않고 그대로 두면 번뇌를 증장시키는 작용을 하는 모든 법들을 통칭한다. 그리고 모든 번뇌는 그 자신을 증장시키는 작용을 하므로 언제나 유루이다. 따라서, 유루는 '모든 번뇌들'과 '번뇌는 아니지만 번뇌를 증장시키는 작용을 하는 모든 법들'을 통칭한다. 예를 들어, 4성제 가운데 집제는 번뇌 그 자체를 말하므로 유루이고, 고제는 번뇌 그 자체는 아니지만 번뇌를 증장시키는 작용을 하므로 유루이다.
이러한 유루의 뜻과 반대의 경우를 무루(無漏, 산스크리트어: anāsravah) 또는 무루법(無漏法, 산스크리트어: anāsravah-dharma)이라고 하는데, 적극적으로 정의할 경우, 번뇌가 끊어진 상태나 번뇌가 끊어지게 하는 작용을 하는 법들을 무루 또는 무루법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4성제 중 멸제는 현재 생겨나 있는 번뇌와 미래에 생겨날 수 있는 번뇌가 모두 끊어진 상태라는 의미의 무루이고, 도제는 현재 생겨나 있는 번뇌와 미래에 생겨날수 있는 번뇌가 끊어지게 하는 길을 가고 있다는 의미의 무루이다.
세간의 정견[世間正見]처럼 번뇌가 약화되게는 하나 번뇌가 끊어지게 하지 못하는 것은 해당 번뇌가 극복된 것, 즉 인(因, 직접적 원인: '개별 번뇌의 속박 또는 극복'과 관련해서는 해당 번뇌 자체가 직접적 원인이 아니며, 해당 번뇌와 상응하려는 삼스카라[行: 경향성, 작용력 또는 형성력, 즉 업력]를 지닌 또는 지니지 않은 상태의 '현재와 미래의 마음'이 각각 속박 또는 극복의 직접적 원인이다)이 제거된 것, 즉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이 더 이상 해당 번뇌와는 결코 다시는 상응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연(緣: 조건, 간접적 원인)이 갖추어지면 약화되었던 번뇌가 다시 증장할 수 있으므로, 즉 마음(6식 또는 8식, 즉 심왕, 즉 심법)이 해당 번뇌와 다시 상응할 수 있으므로 무루가 아닌 유루로 분류한다. (참고: 뒤에 나오는 4성제, 유루혜와 무루혜, 유루지와 무루지 문단)
《구사론》 제2권에서는 여러 가지 견(見)에 대해 설명하면서 번뇌를 구름에, 유루를 한밤중에, 무루를 한낮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 비유에서 구름은 번뇌 그 자체를 가리키고, 한밤중은 번뇌를 증장시키는 조건을 가리키고, 한낮은 번뇌를 제거하는 조건을 가리킨다.
즉, 《구사론》 제2권에서는 유신견(有身見) 등의 다섯 가지 염오견(染汚見: 잘못된 견해)과 세간(世間)의 정견(正見: 바른 견해)과 유학(有學)의 정견(正見)과 무학(無學)의 정견(正見)의 네 가지 종류의 견해에 대해, 비유하자면 한밤중[유루]과 한낮[무루]과 구름[번뇌]이 끼었을 때와 구름이 없을 때에 온갖 색상(色像) 즉 물질을 관찰하면 밝고 어둠의 차이가 있는 것과 같이, 이들 온갖 견(見)의 그 밝고 어둠이 동일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즉, 유신견 등의 염오견은 한밤중[유루]에 구름[번뇌]이 끼인 상태에서 색상을 보는 것이고, 세간의 정견은 한밤중[유루]에 구름[번뇌]이 없는 상태에서 색상을 보는 것이고, 출세간의 성자인 유학의 정견은 한낮[무루]에 구름[번뇌]이 끼인 상태에서 색상을 보는 것이고, 출세간의 성자인 무학 즉 아라한의 정견은 한낮[무루]에 구름[번뇌]이 없는 상태에서 색상을 보는 것이다.
염오견 : 한밤중[유루]에 구름[번뇌]이 끼인 색상을 보는 것
세간정견 : 한밤중[유루]에 구름[번뇌]이 없는 색상을 보는 것
출세간 유학정견 : 한낮[무루]에 구름[번뇌] 끼인 색상 보는 것
출세간 무학정견 : 한낮[무루]에 구름[번뇌] 없는 색상 보는 것
한편, 번뇌는 유루법을 인(因: 직접적 원인)으로 하여 발생할 수도 있지만 무루법을 인(因)으로 하여 발생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4성제의 도제와 멸제를 인(因)으로 하여 번뇌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루법을 연(緣: 조건, 간접적 원인)으로 하여 번뇌가 증장하는 일 즉 심해지는 일은 없다. 예를 들어, 4성제의 도제와 멸제를 연(緣)으로 하여 번뇌가 심해지는 일은 없다. 도제와 멸제에 의할 때는 반드시 번뇌가 감소되거나 끊어진다. (참고: 뒤에 나오는 4성제 단락)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의 교학에 따르면, 일체법인 12처 가운데 5근와 5경의 10색처(十色處)와 '의처(意處)의 일부'와 '법처(法處)의 일부'가 유루이며, 12처 가운데 '2처의 일부' 즉 '의처(意處)의 일부'와 '법처(法處)의 일부'가 무루이다. 즉, 설일체유부의 교학에 따르면 5근과 5경은 언제나 유루이다. 즉 번뇌를 증장시킬 가능성을 언제나 안고 있으며, 잘 다스리지 않으면 반드시 번뇌를 증장시킨다. 이와 관련하여, 5경에 대한 탐욕을 5욕(五欲)이라고 하며, 《잡아함경》 제2권 제58경 〈음근경(陰根經)〉의 고타마 붓다의 가르침에 따르면, 5욕 등의 욕탐(欲貪)으로 인해 5온이 5취온이 된다.
대승불교의 유식유가행파의 전의(轉依)의 교의와 번뇌론에 따르면, 5식과 제8아뢰야식은 부처의 상태가 아닌 한 언제나 유루이며, 제6의식과 제7말나식은 견도에서 일부가 무루가 되며 성불시에 완전히 무루가 된다. 6경과 5근(6근 가운데 의근이 제7말나식임)은 무루심 즉 '무루혜와 상응하고 있는 마음(8식, 즉 심왕, 즉 심법)'과 상응하고 있을 때는 무루이고, 유루심 즉 '유루혜와 상응하고 있는 마음(8식, 즉 심왕, 즉 심법)'과 상응하고 있을 때는 유루이다. 즉, 유루심과 상응하고 있는 6경과 5근의 법들(예를 들어, 마음작용들)은 비록 그 법들이 선(예를 들어, 참 · 괴 등의 선한 마음작용들)이라 할지라도 잘 다스리지 않으면 번뇌를 증장시키게 된다.
이상을 요약하면, 부파불교의 교학에 따르면, 어떤 법에 대하여 번뇌 즉 잡염 즉 '불선과 유부무기의 마음작용'이 따라 증장하지 않으면 그 법은 무루이다.
이에 비해 대승불교의 교학에 따르면, 어떤 법이 번뇌 즉 잡염 즉 '불선과 유부무기의 마음작용' 그 어느 것과도 상응하고 있지 않으면 그 법은 무루이다.
출처 : https://www.wikiwand.com/ko/articles/%EC%9C%A0%EB%A3%A8%EC%99%80_%EB%AC%B4%EB%A3%A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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