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의 차가운 물
단순한 목축임만일까
푸르른 하늘 뜻을 따르는
저 순천한 강물도, 바다도
끊임없이 소리쳐 외쳐대는 폭포도
창문에 쏟아지는 소나기도
비 그친 후 한 방울씩 듣는
낙숫물 소리에도
해독할 수 없지만
경건한 독경소리 스며있는 건 아닐까
바람에 일렁이며 햇살 받아 반짝이는
저 황금빛 그림 글씨
심오한 깨우침의 경전 아닐까
-시집 〈물의 경전〉(2018) 중에서
순리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생각이 들 때쯤은 언제일까? 물같이 고요하고 담백하게 살아갈 수 있을 때는 얼마쯤의 정신적 수양을 갖추고 있어야 할까? ‘저 순천한 강물’이나 ‘소나기 낙숫물’ 속에서 ‘경건한 독경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마음의 경지는 어느 정도일까? 그리워라, ‘바람에 일렁이며 햇살 받아 반짝이는 저 황금빛 그림 글씨’. 언제나 마음의 갈증을 풀어주고 ‘심오한 깨우침’을 주는 저 ‘물의 경전’!
오정환 시인은 시로 이런 마음을 풀어내고 있다. 그때 시는 마음을 닦는 도량 같은 것. 공자도 시를 두고 천지지심(天地之心)이라 했다. 시심(詩心)이 도심(道心)이 되는 셈이다. 도를 말할 때 ‘물’의 형상이 중요하다. 일찍이 노자가 도의 형상을 ‘상선약수(上善若水)’라고 하여 물의 속성에 빗대었다. 시인은 이를 시 속의 이미지로, 더 나아가 시를 쓰는 행위로 구현하고 있다. 부산이 낳은 물의 시인의 마음이 윤슬 같은 이미지로 반짝이고 있다.
김경복 평론가
출처 : https://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24111217543702316
지역 시단의 원로 오정환(사진) 시인이 췌장암으로 투병하다 16일 새벽 2시 영면했다. 향년 70세.
오 시인은 1947년 부산 태생으로 198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으로 등단했다. 부산에서 내내 문학 활동을 한 그는 부산작가회의 회장, 한국민예총 부산지회장 등을 역임하며 지역문학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생전에 “좋은 시는 ‘아무도 손댈 수 없는 시’라고 생각한다. 시란 자신의 인생에서 온갖 것을 가라앉히고 가장 맑은 물, 정수를 뽑아내는 것”이라는 시관을 말하곤 했다. 서정원 부산작가회의 회장은 “선생님은 늘 후배를 아끼고 알뜰한 마음을 가진 분이셨으며, 언제나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셨다”고 회고했다.
이순(耳順)을 넘겨 쓴 세 번째 시집 ‘노자의 마을’은 노자의 도덕경을 곱씹어 삶과 자연의 순리를 생각하고, 독자가 시를 통해 도덕경을 만나기 바라는 마음으로 펴냈다. 이 시집으로 2011년 제11회 최계락문학상을, 2013년에는 시집 ‘푸른 눈’으로 이주홍문학상을 받으며 문학성을 인정받았다.
2014년부터 1년간 국제신문에서 ‘아침의 시’ 코너를 쓰며 매주 숨은 진주 같은 한 편의 시를 소개해 독자의 마음을 따뜻하게 적셨다. 국어교사로 교단에 섰으며 대학 강단에서는 문예창작을 가르쳤다. 시집으로 ‘맹아학교’ ‘물방울 노래’ ‘푸른 눈’이, 시 해설집으로 ‘봄비, 겨울밤 그리고 시’가 있다.
출처 : https://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2100&key=20180117.22029006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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