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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칭의 죽음 / ​최승호

너럭바위 一石 2024. 10. 3. 22:12

 

뒷간에서 애를 낳고 애가 울자 애가 무서워서 얼른 얼굴을 손으로 덮어 죽인

미혼모가 고발하고 손가락질하는 동네사람들 곁을 떠나 이제는 큰 망치 든 안

짱다리 늙은 판사 앞으로 가고 있다

그 죽은 핏덩어리를 뭐라고 불러야 서기(書記)가 받아쓰겠는지 나오자마자 몸

나온 줄 모르고 죽었으니 생일(生)이 바로 기일(忌日)이다 변기통에 붉은 울음

뿐인 생애,혹 살았더라면 큰 도적이나 대시인이 되었을지 그 누구도 점칠 수 없는

그러나 치욕적인 시(詩) 한 편 안 쓰고 깨끗이 갔다 세발자전거 한 번 못 타고 피

라미 한 마리 안 죽이고 갔다. 단 석 줄의 묘비명으로 그 핏덩어리를 기념하자

변기통에 떨어져 변기통에 울다가 거기에 잠들었다

 

 

 

최승호(崔勝鎬, 195491~ ) 시인 겸 대학 교수. 강원 춘천에서 태어나 춘천교육대학에서 전문학사 학위 취득하고 초등교사로 재직하다 1977년 등단했다. 그의 이름을 알린 대설주의보현대시 100주년, 시인들이 뽑은 애송시 100가운데 하나로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