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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속에 이미지 품고있는 미술교사 출신 박윤배 시인

너럭바위 一石 2023. 12. 1. 14:36

“시는 허공을 떠돌다 한 사람에게 안겨 그의 삶, 영혼을 이끄는 역할을 한다”는 박윤배 시인은 “단 한 편이라도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상처입은 영혼을 보듬고 껴안을 수 있는 시를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강원도 평창 출신의 그가 연고도 없는 대구를 첫 근무지로 지망한 이유는 간단했다.

당시 대구의 문학 풍토가 다른 지역에 비해 잘 조성돼 있었고, 내로라하는 문인 가운데 대구 출신이 많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렇게 박윤배(55) 시인은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학교 미술교사로 첫 교편을 잡았다.

 

시인을 꿈꾸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 박 시인은 제천학생문학회를 결성해 이끌 만큼 문학에 관심이 많았다.

 

학교 공부보다는 책 읽기에 빠져있었다. 흥미 위주로 시작했던 독서는 소설과 한국문학, 철학 등에 이르기까지 깊이를 더해갔다. 불면증을 앓을 정도로 밤낮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고등학교 입학 당시 상위권이던 성적은 순식간에 떨어졌다. 계속된 불면증으로 신경쇠약증에 걸리는 등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서 독서 대신 그림 그리기에 눈을 돌렸다.”

 

그림에도 소질을 보이면서 교내 사생대회는 물론 학교 대표로 대회에 출전,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 위상을 드높였다. 그림 그리는 재능을 더해 개인 시화전을 열기도 했다.

 

당시 시화전을 찾은 진주 출신 설창수 시인이 선물한 글귀 천류불식(川流不息)’은 그가 시인의 꿈을 품고 키우게 한 원동력이 됐다.

 

시인의 꿈은 강원도 평창군 대화면이라는 첩첩산중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기억과 경험에서 우러나왔다. 당시의 기억은 훗날 시의 소재를 찾고, 시를 쓰는데 자양분이 됐다.

 

화전을 일궈 생계를 꾸리셨던 부모님은 새벽 일찍 집을 나서 해가 넘어가서야 들어오셨다. 늘 혼자 시간을 보내다 보니 자연과 대화하는 방법을 배웠다. 흙도 주워 먹고 개구리, 돌멩이, 계곡물과 대화하며 하루를 보냈다. 이는 곧 사물들과 대화를 하고 사물이 돼 말을 하기도 하고 대변하기도 하는 등 약자를 위로하는 시 쓰기로 이어졌다.”

 

시 쓰는 미술교사

 

고등학교 시절 미술에도 재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그는 대학 전공 선택을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문학과 그림 어느 것 하나 내려놓을 수 없을 만큼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다.

 

박 시인은 두 가지 모두가 가능한 방법을 생각한 결과 미술을 전공하며 틈틈이 문학을 공부하기로 했다.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시는 미술을 배우면서도 쓸 수 있겠다 싶었다. 반대로 붓 등 도구를 사용하는 미술 특성상 배우지 않으면 그림을 그릴 수 없을 것 같았다고 했다.

 

미술교육을 전공하며 꾸준히 시를 썼다. 전국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현상공모전에 꾸준히 참가했다. 중앙대 주최 제3회 중앙문학상과 원광대 주최 제1회 대학문학상을 거머쥐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신춘문예 본선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미술교사가 된 이후에도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다. 미술교사였지만 문예반을 맡아 지도하기도 했다. 전국 지도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평가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상을 받기도 했다.

 

전업시인의 길로 들어섰지만, 21년 간 미술교사로 교편을 잡은 그답게 그의 시에는 글과 그림이 함께 있다는 평을 받는다. 그림이 그려지는 시를 쓰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라는 박 시인은 이미지를 가장 중점적으로 떠올려 시를 쓴다고 했다.

 

그는 또 시를 접한 이들이 위로 받는 시를 쓰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다. 생명을 불어넣고 사물이나 무의미한 대상을 의미 있게 바라본다.

 

최근에는 일상 주변의 사건을 꾸미지 않는 그대로 쓰는 시의 기법을 추구하고 있다. 경험의 동질성으로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어서다.

 

지나친 상상력을 지양하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본 시 정지를 만나다가 대표적이다.

 

시인 배출하는 시인

 

박 시인이 대구에 정착한 지 올해로 30년을 맞았다.

 

문학풍토가 잘 조성돼 있어 대구를 첫 근무지로 지망해서 왔지만 정작 문인들과 어울리며 활동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다른 지역에서 왔다는 이유로 10년가량을 외로움과 싸우며 시를 썼다.

 

박 시인은 대구 문인들에게 이름을 알리기까지 10년이 걸렸다. 홀로 시를 쓰고 시집을 내고 하다가 1996시와시학에서 신인상을 받고 나서야 울타리가 생겼다. 그리고 내 사람이다, 우리 가족이다고 인정받기까지는 20년이 걸렸다고 했다.

 

지난 2월부터는 가창군에서 갤러리 아르떼를 운영하고 있다. 대구 문인들은 물론 지역민이 유익하게 활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마련했다. 시낭송회와 출판기념회, 예술관련 특강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올해로 9년째 운영하고 있는 시창작원 형상시학도 이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40여명의 지역민을 대상으로 시를 가르치고 있다. 최근에는 그의 제자들이 엮은 네 번째 문집 상화집이 출간되기도 했다.

 

시는 시인만의 전유물이 아닌 것 같다. 누구나 시를 쓰고 있고,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 모두 시인이다. 삶이라는게 녹록하거나 즐거움만 있는 게 아니다. 삶 속에는 고통, 나름의 고민, 즐거움이 있다. 시를 단지 밖으로 표출하느냐 안하느냐의 차이다.”

 

그는 자신이 쓴 시가 독이 될까 약이 될까를 고민한다고 했다. 그리고 어느 누구에게든 위로가 될 수 있는 시를 쓰는 꿈을 안고 있다.

 

박 시인은 시는 힘이 없고 고통을 치유할 힘도 없다. 그러나 한 시인에게서 떠나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허공을 떠돌다 한 사람에게 안겼을 때 그 시 한 편은 한 사람의 삶, 영혼을 이끈다. 이는 곧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상처입은 이들을 보듬고 껴안는 역할을 할 것이라며 미래에도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시, 그런 시 한 편을 쓰기 위해 노력 중이다고 말했다.

 

그는 대구 문단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박윤배 시인은 기존 기성 시인들이 후배 양성을 위해 노력해야 대구 문단이 성장할 수 있다. 문학상 심사나 강의 등 능력있는 후배 양성을 위해 그들에게도 기회를 줘야 한다. 특히 그룹별로 무리, 울타리를 허물고 화합할 기회, 자리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박윤배 시인 약력

1961년 강원도 평창 출생1989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겨울판화’ 당선1993년 시집 ‘북의 비밀’ 출간1996년 ‘시와 시학’ 신인상 수상2009년 대구시인협회상 수상2009년 시집 ‘붉은 도마’ 출간2013년 시집 ‘연애’ 출간2015년 시집 ‘알약’ 출간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http://www.idaegu.com/?c=7&uid=3479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