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 조식 선생은 산청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다. 태어난 곳은 이웃한 합천군 삼가면 토동이지만, 61세에 산청군 덕산으로 옮겨와 산천재를 짓고 후진을 양성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 72세이던 1572년 2월 산천재에서 운명했다. 11년간 지역 사람으로 살면서 이곳에 묻혔다. 남명 조식 유적은 두 곳으로 나뉘는데, 사리에는 산천재, 별묘, 신도비, 묘비가 있고, 원리에는 덕천서원과 세심정이 있다.
산청에 자리한 남명조식 유적지 중 가장 대표적인 곳이 산천재다. 조식선생이 61세 때인 1561년 산청군 덕산으로 내려와 산천재를 지었다. 규모는 앞면 2칸, 옆면 2칸으로 1818년에 고쳐 지었다. 산천재에서 갈고 닦은 학문을 제자들에게 전수하다 1572년 2월 8일 72세의 나이로 이곳에서 운명하게 된다.
산천재는 현판이 2개나 달려있다. 전서체는 조윤형의 글씨이고, 해서체는 이익회의 글씨다. 이중 전서체 글씨가 멀리서도 잘 보이게 매달려 있다. 그림을 그려놓은 듯한 회화적인 필체가 돋보인다. 뫼 산(山)자는 조식 선생이 바라보던 지리산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듯 생명력이 넘친다.


새벽부터 날 샐 때까지 눈까지 내렸구나
선비집은 오래도록 외롭고 쓸쓸했는데
매화가 피어나니 다시 맑은 기운 솟아나네

남명조식선생의 선비정신이 살아있는 남명기념관
남명 조식의 탄생 500주년을 맞은 2001년 설립을 추진해 2004년 8월에 문을 연 곳이 남명기념관이다. 남명선생의 학덕을 기리고 유품과 관련 자료들을 보관 전시하고 있다. 남명기념관은 산천재 맞은편의 2차선 도로변에 자리하고 있다. 기념관에 들어서면 왼쪽에 옥돌로 만들어진 남명선생의 동상이 지리산을 등지고 서 있다. 신도비는 우암 송시열 선생이 지은 것으로 선생의 학문과 사상을 잘 나타내었다. 여재실은 문중에서 선생에게 제사를 드리는 가묘가 있는 곳이다.

조식선생은 25세때 원나라 선비인 노재 허형의 '모든 일은 낱낱이 살피어 물질을 쫓아갈 것은 아니다' 라는 말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 이후 학문 연구에 더욱 열중하였다고 한다. 남명선생의 사상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실행에 중점을 두어 직절하고 의리있는 꿋꿋한 선비정신이다. 선생의 학문은 경의학으로 알고서 올바르게 실행해야 한다는 점을 중시하였다. 둘째는 자기의 맡은 직분에 충실할 것과 백성과 선비가 나라의 근본이라고 했다. 몇 차례 국가의 부름을 받고 정치하는 도리만 설명하고는 번번이 돌아와 후진양성에 힘썼다.


오전 10시에 문을 열어 오후 6시에 문을 닫는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

덕천서원 입구에는 우뚝 솟은 은행나무가 있어 시선을 사로잡는다. 덕천서원이 세워질 때 심었다고 전해오는 나무로 수령은 450년이 넘는다. 나무의 높이는 18m에 이르며, 둘레는 4.5m로 어른 세 사람이 안아야 할 만큼 웅장한 자태를 뽐낸다. 11월 초순 경 황금빛으로 물든 풍경이 특히 장관이다.


경의당 뒤쪽으로 사당인 숭덕사에 남명선생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매년 봄과 가을에 두 차례 향례를 올리고, 선생을 추모하는 남명제를 지낸다. 수령 450년생 은행나무가 자라는 도로 건너편에는 정자 세심정이 세워져 있다. 덕천 강변에 세워져 바람을 느끼며 쉬어가기에 좋다.

남명기념관
주소 : 경남 산청군 시천면 남명로 311
문의 : 055-973-9781
출처 : https://korean.visitkorea.or.kr/detail/rem_detail.do?cotid=e0718aa4-d158-4358-b561-62f96242c0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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