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탕가 요가에는 시퀀스가 정해져 있어서 수련 때마다 같은 자세들을 반복한다. 태양 경배 자세, 전사 자세, 한국어로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다양한 자세들을 요가매트 위에서 낑낑대며 반복한 지 벌써 4년의 시간이 흘렀다. 같은 자세를 반복하다 보면 어제와 오늘의 차이를, 1㎝씩 더 뻗어지고 구부러지는 팔다리와 조금씩 강해지는 힘을 더욱 세밀하게 느낄 수 있다. 흰 종이에 묻은 얼룩이 더 잘 보이듯이, 반복의 행위는 깨끗하고 맑은 바탕을 만든다. 그 위에 얹히는 삶의 다채로운 무늬들이 더 잘 보이도록.
반복되는 몸짓들을 떠올려 본다. 작가라면 그의 매일을 키보드를 두드리는 움직임으로 채울 것이다. 운동 선수라면 반복되는 격렬한 훈련으로, 요리사라면 재료를 자르고 달구는 행위로, 선생님이라면 말하고 가르치는 몸짓으로 채울 것이다. 우리는 같은 움직임을 반복하며 세계의 무늬를 만든다. 때로는 지루하고 답답하기도 하지만 반복은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 만드는 일이다. 한 사람이 반복하는 말하기 방식은 말투가 되고, 반복하는 걷기의 방식은 걸음걸이가 되며, 반복하는 표정은 얼굴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친한 사람들을 그들의 말투나 걸음걸이를 통해 알아볼 수 있다. 알아볼 수 있기 때문에 서로 관계 맺고 사랑할 수 있다. 반복을 지속한 덕분에, 누군가는 고유한 한 사람이 된다.
어떤 것을 반복할 것인가 선택하는 일은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를 선택하는 일과 같다. 나의 삶에서 반복해온 것들을 떠올려 본다. 작게는 반복적으로 흥얼거리는 노래들부터 크게는 나를 먹여 살리기 위해 하는 일들과 작가로서 해왔던 작업들까지, 내 삶이 모두 반복으로 채워져 있음을 깨닫는다. 언젠가는 내 몸이 해왔던 반복의 행위들이 모두 끝날 것이다. 그러나 더 넓은 시야에서 봤을 때 인류 역시 반복이며, 우주 역시 반복이다. 그러므로 바흐의 푸가처럼 끝은 새로운 반복과 변주의 시작이 될 것이다.
김선오 시인
출처 :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5/0001759164?sid=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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